사라진 세븐일레븐과 2.38%의 확률, 가장 과격하고 다정한 하나님의 윙크
오늘 오전, 딱히 흥미도 느껴지지 않는 면접을 하나 치렀다. 일정이 끝나자마자 습관처럼 곧장 집으로 향하려는데, 남편이 말했다.
하지만 늘 계획을 세운 대로만 움직이고, 볼일만 마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자투리 시간에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기던 나에게 '노는 법'이란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외국어처럼 낯설기만 했다.
텅 빈 캔버스 같은 자유시간을 앞에 두고 도대체 뭘 하며 놀아야 할지 몰라 한참을 방황하던 내가 결국 발길을 멈춘 곳은, 그저 익숙한 허기를 채워줄 어느 식당 앞이었다.
메뉴판 앞의 까막눈, 스페셜 메뉴를 짚다
복잡한 메뉴판 앞에서도 나는 지독한 까막눈이었다.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는 요일별 스페셜 안내판은 보지도 못한 채, 그저 느낌 가는 대로 메뉴 하나를 짚었다. 그런데 계산할 때 보니, 그것이 하필 2.38%의 희박한 확률을 뚫고 내 손에 들어온 오늘만의 할인 메뉴라는 것이다.
남들은 그저 "운이 좋았네, 밥값 굳었네" 하고 쿨하게 넘길 사소한 영수증 쪼가리지만, 나는 기어코 이 안에서 '하나님의 다정한 윙크'를 찾아내고야 마는 사람이다.
굳게 닫힌 문 끝에 예비된 달콤한 위로
하나님의 윙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밥값을 아꼈으니 원래 계획은 근처 세븐일레븐에 가서 싼 커피로 입가심을 하는 것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수차례 지나치며 보았던 세븐일레븐이, 막상 가려고 고개를 돌리니 갑자기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순간 '내가 이렇게 길치였나?' 싶어 당황했지만, 곧바로 내 특유 of 직관력이 발동했다.
'아! 하나님이 아까 점심값으로 아낀 돈, 기왕이면 더 맛있는 커피 마시는 데 쓰라고 내 눈을 가리셨나 보다!'
그런데 세상에! 내가 문을 편하게 열고 들어간 딱 그 타이밍에, 그곳에서 '회원 가입 시 츄러스 무료'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다. 결국 향긋한 커피 한 잔 값으로 갓 튀긴 공짜 츄러스까지 야무지게 얻어먹게 되었다.
마치 하늘에서 이렇게 1:1 VIP 밀착 관리를 해주며 특급 결재를 내려주신 것만 같았다.
가장 과격한 윙크, 내 인생의 뼈대를 다시 세우다
달콤한 츄러스를 한 입 베어 물며, 나의 이 '미친 직관력'으로 최근 내 삶을 휩쓸고 간 거대한 폭풍을 가만히 복기해 보았다.
물론 나에게도 부족함은 있었다. 하지만 원어민 학생이었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사소한 지점들까지 현미경을 들이대듯 평가받고, 규정된 기간을 한참 지나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길어진 행정 절차를 견뎌야 했던 시간은 분명 가혹했다.
실습 현장에서 하필이면 수퍼바이저가 중간에 바뀌고, 바뀐 수퍼바이저가 출산 휴가에서 막 복귀하여 낯선 이방인 학생을 향한 날 선 시선을 거두지 않는 사람일 확률. 내가 실습하는 자리에 재작년에 낙제했던 다른 학생이 갑자기 추가 실습생으로 나타나고, 그 학생을 평가하러 온 남자 코디네이터가 예고도 없이 나를 타깃 삼아 기습적인 평가를 시작할 확률.
과거 무례한 지도 방식에 대해 목소리를 냈던 나를 기억하고 있던 그는, 나를 다시 마주하자 노골적인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다. 환자의 계단 보행을 안전하게 수행했고 현장에서도 인정받은 나의 점수를 두고 그는 아니라고 우기며 나를 몰아세웠다. 하지만 결국 내가 판단한 데이터가 맞았다. 그가 우긴 대로라면 누가 보아도 독립적인 일상 수행이 가능한 환자가 수치상으로는 부자유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모순에 빠졌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슬그머니 자신의 주장을 굽혔지만, 그 과정에서 겪은 부당함과 억울함은 마음 깊이 생채기를 남겼다.
그 실습의 마무리는 더 비현실적이었다. 나를 무시하던 수퍼바이저는 최종 결과 상담 날 아예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채 성적표만 던져버렸다. 아무리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 평가와 최종 결과가 소수점 하나 다르지 않게 복사한 듯 대충 던져진 점수였다.
다시 얻은 두 번째 기회조차 확률의 장난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 수퍼바이저는 내가 모든 질문에 근거를 갖춰 답하면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자"며 말을 돌리더니, 정작 자신의 논거는 "40년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며 책에도 없는 스무고개식 문답으로 나를 시험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약속이라도 한 듯 마지막 평가 날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그녀가 부재중에 나를 통과시키려던 다른 동료에게 연락해 "지난번에 답을 못했으니 절대로 통과를 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남겼다는 것이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원칙을 증명하며 성장을 보여주었음에도, 정작 책임자는 내 노력을 직접 확인하지도 않은 채 이미 실패라는 결론을 확정 지어 놓았다. 곁에서 나의 변화를 지켜보며 응원하던 다른 수퍼바이저 조차 이 상식 밖의 상황에 어찌할 바 몰라 하며 나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할 뿐이었다.
그 후 규정상 21일이면 나와야 할 결과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미뤄져 피를 말리며 행정절차가 2달이나 걸릴 확률, 그리고 그 기나긴 터널 끝에 결국 내 손에는 "페일 Fail" 이라는 차가운 성적표가 쥐어졌다.
이 비현실적인 확률의 연쇄 고리는 단순히 '운이 없다'는 말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나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정확히 관통하여 나를 익숙한 궤도에서 강제로 이탈시키려는, 하나님의 아주 정교하고도 과격한 타격이었다.
이 끔찍한 악재들이 연달아 일어날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오늘 점심에 까막눈으로 스페셜 메뉴를 골라내고, 멀쩡한 세븐일레븐이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질 확률보다 훨씬, 무한대에 가깝게 희박할 것이다. 누군가는 "진짜 운도 지지리 없다"며 혀를 끌끌 찰 테고, 나 역시 억울함에 잠을 설치며 발버둥을 쳤었다.
내 인생에 일어난 이 희박한 확률의 연속 역시 단순한 '재수 없음'이 아니었다. 이것은 나를 기존의 궤도에서 강제로 이탈시키기 위한 매우 정밀한 타격, 즉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새로운 길을 향한 완벽한 서사
만약 내가 그 실습을 한번에 무난하게 패스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얄팍하게 세워둔 계획과 고집대로 뻔한 길을 향해 직진했을 것이다. 흥미가 없다는 이유로 오늘 같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현장에 지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는 일 따위는 내 인생 계획표에 단 한 줄도 없었을 테니까.
어쩌면 나는 내 인생의 메뉴판 앞에서도 지독한 까막눈이었는지 모른다. 내 눈엔 그저 안전하고 익숙한 길만 보였지만,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은 내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계셨다. 번듯한 타이틀을 달고 온실 속 화초처럼 안주하기 전에, 굳이 문을 닫고 길을 막아서라도 가장 돌아가기 싫어했던 일터로 다시 돌아가서 내가 너에게 예비한 것을 보라는 것. 그것이 내가 '페일'이라는 아픈 브레이크를 맞고, 오늘의 면접장에 앉아 있어야만 했던 이유일 것이다.
오늘 점심, 아무것도 모르고 짚었던 메뉴가 나를 위해 준비된 완벽한 '스페셜 메뉴'였고, 닫힌 문들이 결국 '달콤한 츄러스'로 나를 안내했던 것처럼.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줄 알았던 내 최근의 아픈 시간들은, 사실 나를 더 크고 단단한 그릇으로 옮겨 담기 위한 하나님의 과격하고도 다정한 윙크였다.
비록 남들처럼 화려하게 노는 법은 아직 잘 몰라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갔지만,
남들은 실패라 부르는 지독한 확률 속에서 기어코 나를 위한 완벽한 하나님의 뜻을 느끼고 나누는 것.
어쩌면 이것이 나만의 가장 즐거운 놀이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나를 향한 이 특별한 돌보심을 굳게 믿고, 기꺼이 내게 주어진 새로운 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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